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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닷컴] 내가 살았던 연길에는/작가 생애 이력서 (김훈)

조글로 潮歌网 2020-09-15

연길의 옛 시가지(70~80년대)



내가 살았던 연길에는



김훈


북에는 뾰족산 남에는 모아산이 있지

봄에는 뾰족산에서

진달래 꽃잎을 따 먹고

가을엔 모아산에서

사과배 향기에 취했다

 

내가 살았던 연길에는

서쪽에는 웃개방지 동쪽에는 아래개방지

아침엔 웃개방지 된장국에

누룽지밥 맛있게 말아먹고

저녁엔 아래개방지에서

마라탕 빼주에 취했다

 

내가 살았던 연길에는

큰 강은 하남갠 작은 강은 공원갠 있지

물장구 함께 치던

못 잊을 송아지 친구들아

지금은 어디에 있냐

고향의 향수에 취한다

 

어허허 꿈결에도 너를 찾는다



작가 생애 이력서


김훈


  몸담고 있는 곳이 직장이라면 필자도 직장을 여러 번 바꾸었다. 중국의 근무 년한 규정에 따르면 필자의 첫 직장은 당시 말로 “지식청년”으로 15살 나이에 자리를 잡았던 “광활한 천지”, 사실은 별 볼 것 없는 시골마을이다.


  그담 이어진 “직장”은 꿈 많던 대학시절이였다. 연변대학 조문학부를 마치고 배치 받은 곳은 연길현문공단(후에 룡정시예술단이라고 개칭) 창작실, 그 뒤로 북경영화학원 시나리오작가반, 연변문예창작실, 북경영화학원 시나리오학부 석사연구생반, 연변텔레비전방송국을 전전하다가 중국국제방송국에서 칼럼니스트로 정년을 맞았다.  


  어린 나이에 “직장인”으로 사회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필자는 자신을 직장인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별로 없다. 직장인이라면 우선 직장인으로서의 긍지감이 있을 거고 잇따라 따라 오는 것이 수없이 겪게 되는 갈등과 고뇌, 거기에 겹치는 가정, 명예, 승진 등등 요인으로 받게 되는 스트레스. 하지만 필자가 그런 스트레스를 별로 받지 않고 말하자면 “멋대로”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은 건  남들이 가지지 못한 또 다른 “직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작가의 “직장”이다.


  “지식청년시절” 밤마다 할 일 없이 밤하늘을 쳐다보면서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하면서 별을 헤면서 작가가 될 꿈을 꾸었고 대학시절 그 꿈을 부풀리기 시작하다가 연길현문공단 창작실에 배치 받으면서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전직 작가로 시, 가사, 연극, 소설, 시나리오, 칼럼, 기행문을 닥치는 대로 쓰면서 문단에 얼굴을 들이 밀었다. 연길현문공단은 필자에겐 명실 공히 작가의 첫 “직장”이였다.


  그 당시에도 “작가는 정치운동이 시작되면 먼저 얻어터진다.”는 말이 선배 작가들의 피멍이 든 가슴에서 울려나오는 하소연과 조언으로 되고 있었지만 그러나 "사내가 한번 칼을 빼들었으면 잡초라도 베라"는 말과 같이 필자는 "한번 빼든 칼"을 휘둘러보기로 결단했다. 지금도 이 말은 필자에게는 좌우명이다.


  필자의 작가생애는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일 년에 집에 있는 시간이 명절까지 합해서 두 달밖에 되지 않았다. 온 사회가 필자의 무대였고 모든 사람들이 작품의  주인공이였다. 사회 전체가 필자의 “직장”이 된 것이다.

  남들 눈에는 작가란 아주 “자유분방”한 사람으로 비취겠지만 사실 작가에겐 고충과 비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느 직장과 마찬가지로 작가의 “직장”에도 “색안경”을 쓴 “상사”의 독단이 있다. 그런 “상사”의 독단에 머리를 수그린다면 작가가 아니다.


  매번 “상사”의 독단에 자신 있게 맞설 수 있은 것은 필자가 손에 쥐고 있는 비상의 무기인 “필”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기, 질투, 비방, 중상, 모략, 지어 공권력까지 동원해 공직이나 명예는 박탈할 수 있어도 필자의 손에 쥐여진 필만은 박탈할 수 없다. “필”은 작가의 유일한 권리이니까. 감옥행까지 경험한 한국의 황석영 소설가는 “난 겁 같은 건 없어. 작가는 아무리 망가져도 작가니까. 그게 좋은 점이다”이라고 했다. 맞다, 바로 그게 작가가 유일하게 세상에 자랑할 “좋은 점이다”


  오래전의 일인데 문학포럼에서 한 문학 지망생이 작가란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했다. 17살부터 시작된 창작생애에서 필자는 작가가 대체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 또한 그럴 필요조차 느끼지도 못했던 차라 인차 답이 나오지 않았다. 물음에는 답을 줘야 하기에 생각나는 대로 이렇게 답했다.


  작가는 인간과의 대화는 물론 삼라만상과 대화가 가능하다. 하늘의 태양, 지어 꽃잎에 맺힌 이슬, 지어 령혼, 무한한 우주, 부처님, 하나님과도 대화가 가능하다.


  작가가 대화에서 받는 계시, 창작 충동을 일명 영감사유라고 한다.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창조적인 사유, 말하자면 창의적인 기발한 생각이다. 작가의 영감을 유발하는 작가의 생활과 사색은 사명감에서 온다고 본다. 작가의 사명감에 대해 작가들마다 다 나름대로의 해석이 있지만 필자 생각에는 작가의 사명감은 인간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안고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그리는 것이 아닐 가 싶다.


  한국의 조정래 소설가는 필자와의 만남의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소설가는 그냥 고개를 푹 숙이고 묵묵히 밭길을 걷는 농부와 같다.” 농부는 묵묵히 밭길을 걷지만 가을을 꿈꾼다. 작가 역시 농부마냥 창작에서 수확의 계절을 꿈꾼다.


  한 후배가 필자를 “자유를 만끽하는 분”이라고 했다. 문학 자체가 자유이니까 작가는 당연히 그 자유를 만끽할 수밖에. 이보다 더 기막힌 호칭이 있다. 그것이 바로 "자유 령혼의 소유자"!


  “자유 령혼의 소유자”는 영국의 귀족정신에서 나온 말인데 영국의 귀족정신에 대해 세 가지로 귀납하고 있다. 첫째, 문화적인 자질, 물욕, 향락을 인생의 최종 목적으로 삼지 않고 도덕, 정조를 겸비한 문화정신, 둘째, 사회에 대한 책임감, 셋째,자유 령혼의 소유자,


김훈

  영국의 귀족정신은 우리 민족의 선비 정신과 비슷하다. 독자적인 의식이 있고 권력과 금전 앞에서도 과감히 "노"를 부를 수 있으며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자주적인 의식을 갖고 있는, 여기에 하나 더 보태서 작가적인 안목을 갖춘 “자유 령혼의 소유자”, 필자의 바람이다.



勋之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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