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닷컴] (수필) 고비 (궁금이)
궁금이 수필세계10
고비
글 | 궁금이 · 방송 | 김홍화
어느날 저녁에는 아빠트단지의 어떤 차가 대문을 막아서 모든 차들이 다른 문으로 에돌아 출입했다. 주차 수금문제로 시비를 하다가 차에 탔던 부부간이 아예 차에서 내려서는 차문을 잠그고 가버렸다. 분쟁은 차를 다른 곳에 세워놓고 해결해도 되겠건만 사람이 흥분하면 그게 또 생각처럼 리성적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이 차 한대로 해서 아빠트단지의 모든 차들이 길을 바꾸어 에돌아가야 하는 민페를 끼쳤다. 내 돈은 아깝고 다른 사람의 시간은 내가 알 바 아니라는 리기적인 처사다. 특히 이 시기에 공공장소 소란죄가 적용되면 그 다음에는 단순히 주차비로 끝날 일이 아니다.
이튿날 아침에 일찍 나오면서 보니 대문을 막아섰던 차가 이미 처리되였다. 그런데 나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지만 아침부터 싱겁게도 그 차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기는 하다. 그래서 주차관리원한테 물어봤다.
“어제 차는 어떻게 됐어요?”
“어떻게 되긴요. 파출소에 갔죠.”
“그래서요?”
“1전도 빠짐없이 699원을 다 내고 합의를 봤습니다.”
그러니까 차증이 없는 차를 아빠트단지내에 장시간 세워뒀는데 주차비가 너무 많이 나와서 차주인은 안 내겠다고 하고 주차관리원은 안 내면 못 나간다고 하면서 분쟁이 생긴 거다. 요즘은 주차장 출입이 실시간으로 컴퓨터에 기록돼 분초까지 정확히 나오는 시절이라 계산서를 파출소에 제출하면 차주인은 용빼는 수가 없다. 아무래도 낼 돈을 아주 거창하게 법적 절차까지 밟으며 어렵게 냈다.
물론 외부 차량도 아니고 아빠트단지내에 살면서 오래동안 출입을 하지 않았을 뿐인데 어느날 바깥 세상 한번 구경하려니 무슨 입장권도 아니고 출구에서 몇백원씩이나 나왔으니 일시적으로 억울한 심정은 리해가 간다. 그런데 원래도 긴장한 주차위를 하나 차지하고 있은 건 엄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차주인과 주차관리원 쌍방의 문제이지 애매한 다른 차에까지 루를 끼칠 일은 아니였다. 이렇게 어떤 때에는 시비가 붙다 보면 속으로는 내가 도리에 지는 일이라는 걸 느끼면서도 이미 백열화에로 치달은 상태에서는 자기의 립장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도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그래서 억지로 우기고 화풀이를 하면서 일이 더 커진다. 순간의 고비를 넘기는 게 어려워 결국 더 큰 문제를 만든다.
사람은 평생에 고비라는 걸 여러개씩 넘기며 살아간다. 그때마다 지나오고 나면 옛말을 하지만 당시에는 죽을 맛이다. 민간에서는 아홉고개라고 해서 사람은 9자가 들어가는 나이만 무사히 넘기면 또 10년은 문제 없다는 막연하고 근거 없는 미신을 한다. 이런 착각은 9자가 들어가는 나이에 세상을 하직한 사람들만 통계해서 거기에 이 기막힌 론리를 껴맞추면서 생긴다.
이건 마치 우리가 공원에 가면 벽에다 작은 고무풍선을 가득 붙여놓고 장난감총을 쏴서 터치우는 것과 비슷한 확률이다. 그 게임을 하는 사람들을 들여다보면 아주 정신을 집중해 어느 한 풍선을 묘준하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그냥 벽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내에서 눈을 감고 쏴도 풍선이 잘만 터진다. 만약 맞히지 못할 풍선이라면 아무리 묘준을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반대로 하나도 맞히지 못한 사람보고 다시 쏴서 이번에는 맞히지 못한 개수로 계산한다면 오히려 더 많이 맞힐 수도 있다. 게임은 게임일 뿐 수학적인 확률분석까지 곁들일 필요가 없다. 사람의 생각이 한곬으로 흐르면 다른 방향으로 돌리기 어려운 리유는 근거가 있든 없든 오로지 거기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생긴다. 생각에도 고비라는 게 있다.
국내 신종코로나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이제 가장 어려운 고비를 넘겼다고 봐야 한다. 아직도 경계심을 늦추어서는 안 되지만 하루에 확진자가 천여명씩 늘어나던 때의 공포감에 비하면 확실히 많이 완화된 상태다. 이제 고비는 국외로부터의 류입을 어떻게 통제하냐는 문제인데 그 고비도 세계적인 공동 대응으로 반드시 지나가리라 믿는다. 이렇게 어떤 고비는 자존심을 세우며 끌어안고 혼자 끙끙 앓기보다는 여러 면의 공조로 함께 해결해야만 되는 때가 있다. 평생 마스크에 거부감을 갖고 심지어 마스크를 쓰는 사람들을 다른 눈길로 바라봤던 시선도 이번에는 다 하나로 인식이 통일되였다. 어떤 고비는 고집만 버리면 해결이 훨씬 쉬워진다.
요즘 드라마를 들여다보면 부부가 헤여지고도 한집에서 사는 삶의 현장이 많이 등장한다. 서로가 한집에서 살기는 하되 이런저런 사항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각서까지 써놓고 같이 산다. 애한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한 선택도 있고 외부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게 싫은 원인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부부가 아닌 부부처럼 살다가 결국에는 서로에게 다시 호감이 생겨난다. 전에는 나쁜점만 보였는데 남남이 되고 보니 이 인간한테 저런 면도 있었냐 싶으며 하나둘 괜찮은 점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면 모순의 정점을 찍는 어느 한 고비만 넘겼어도 파국으로까지는 가지 않을 관계였다.
노래에도 고조부분이 있다. 웬만한 가창력으로는 그 부분을 넘기기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그 부분이 오기전에 지레 걱정이 되며 오히려 가창력 발휘에 더 영향주는 경우도 없지 않다. 하지만 자신심을 가지고 갈린 목소리로라도 그 고비를 넘기면 다음은 유연한 멜로디다. 그래서 그런지 노래는 5절 6절까지 만들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고비를 여러개 조성할 필요가 없다. 부부사이에도 잔소리를 하고 바가지를 긁을라 치면 1절만 하라고 그런다. 점입가경의 고비가 너무 공포스러운 거다.
우리는 이번 신종코로나바이러스를 거치면서 한자 단어로 후릴 “괴”자에 점 “점”자를 써서 신규 확진자수가 치달은 최고점을 명사화했다. 번역 사전에서는 우리말로 전환점이라고 했는데 한국 언론에서는 변곡점이라고 했다. 변곡점의 사전 풀이는 “굴곡의 방향이 바뀌는 자리를 나타내는 곡선 우의 점”으로 되여 있다. 이렇게 보면 전환점보다는 변곡점이 훨씬 뜻에 들어맞는 정확한 단어이다.
이렇게 문자 번역에서도 애써 생각했는데 마음에 드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다가도 어느 한 순간에 머리를 심하게 끄덕이게 만드는 반짝이는 단어가 나타난다.
변곡점이 곧 고비이다.
궁금이
youshengxiangban@126.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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