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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강일 추리소설] 도시는 알고 있다(7)

조글로 潮歌网 2020-09-15

 알림:  조글로 사이트(www.zoglo.net/ckywf.com)가 새 버전 업데이트 관계로 다운됩니다. 1주일후 새 모습으로 뵙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문단 신선한 활력소! 추리소설 작가 허강일!

극작가, 시인, 기자로서의 허강일이 펼쳐보이는 숨막히는 드라마!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한치 앞도 내다 볼수 없는 운명의 대결! 지금 펼쳐집니다.


 화목련재


 허강일  장편추리소설 

도시는 알고 있다


23


홀리데이커피숍은 형형색색의 외국인들이 자유분방하게 드나드는 곳으로 유명하다. 해빛이 잘 드는 창가에 자리잡은 아늑한 곳에 정장 차림의 문수와 정호가 어떤 녀인과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다. 굽실굽실한 머리에 하얀 은테안경을 건 녀인은 온몸에 우아하고도 도도한 기품이 넘치고 있었다. 하나꼬라고 불리는 이 녀인은 재일교포로서 중국어는 물론 한국어도 완벽하게 구사하고 있었다.

“이렇게 호텔까지 찾아주신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하나꼬가 깍듯이 인사를 올렸다.

“아니, 별 말씀을요. 저희를 믿고 저희 회사를 찾아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문수가 고개를 숙여 답례하였다.

“전, 중국을 잘 모르지만 중국을 참 좋아합니다. 중국인들의 근면한 성품과 김사장처럼 진취적인 정신을 갖고 있는 분들을 만나면 너무 행복하고 축복받은 느낌입니다.”

하나꼬는 얼굴에 밝은 미소를 가득 담고 말했다. 50대 중반처럼 보였지만 60을 넘겼다고 하였다.

“솔직히 말해서 사실 저희 회사는 지금 자금난에 부딪쳐 파산 직전입니다. 그러기에 지금 오다를 준다해도 저희 힘으로는 생산할 수 없습니다.”

문수가 오다를 받고도 생산할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솔직히 털어놓으며 게면쩍게 웃었다.

“알고 있어요. 꾸미지 않고 솔직한 그 모습이 좋아서 지금 자리를 같이 하는 거예요. 이제 계약이 끝나면 선불금을 낼 테니까 계약을 체결하는 대로 추진시켜봅시다.”

“네. 너무 감사합니다.”

문수가 고개를 숙였다.

“실례인지는 모르지만 가족은 어떻게 되죠? 합작 파트너를 고를 때 저는 가족에 대한 료해를 하는 편이라서…”

하나꼬가 어렵사리 말을 꺼내자 문수가 인츰 대답했다.

“가화만사성이라고 저도 그것을 몹시 따집니다. 저의 동생도 그렇고, 저희들은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들과만 일을 하지요.”

“아, 그럼 잘 됐네요. 부모님은 계시는가요?”

하나꼬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피여올랐다.

“저는 사실 친부모 얼굴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네?”

하나꼬의 눈이 둥그래졌다.

“후날 양부모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돌아가게 되여서야 알았습니다. 제가 입양된 사람이라는 것을…”

문수의 얼굴엔 쓸쓸한 표정이 엷게 덮혔다.

“죄송해요. 전, 그런 사연이 있는 줄도 모르고…”

하나꼬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닙니다. 비록 못 만나봤지만 저는 그래도 누군가 저의 친부모에 대해 물어보면 너무나도 좋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에 대해 말할 기회가 있으니까요.”

문수는 저도 모르게 그리움에 넘치는 듯 천진란만한 표정을 지었다. 

“결혼해서 인젠 저도 부모로 되였는데 커가는 자식들을 볼 때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있을 때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였는데 비록 양부모라고 해도…”

부모에 대한 그리움에 푹 빠진 문수의 얼굴을 보면서 하나꼬가 단아한 미소를 띄우고 손을 내밀었다.

“알았어요. 좋은 사람들이니까 이제 좋은 일들이 넘치리라 생각합니다.”

“좋은 합작을 기대합니다.”

문수도 두손을 내밀어 하나꼬의 손을 잡았다.

어쩐지 평생 잡아보지 못한 엄마의 손을 잡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형, 저, 저기, 사채업자들이 나타났소.”

화장실을 다녀오던 정호가 호텔 입구를 가리키며 경황없이 말했다. 

문수가 내다보니 민혁이가 한무리를 거느리고 호텔에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민혁은 마치 개 잡는 포수마냥 앞에서 거들먹거리며 걸어왔고 부하들은 일사정연하게 갈매기 형태로 뒤를 따르고 있었다.

“넌, 아무 말도 말고 가만있어라.”

문수가 얼굴이 파랗게 질려있는 정호의 팔을 꼭 잡으며 말했다.

“저, 실례하겠습니다. 좀 일이 있을 것 같아서…”

문수가 허리 굽혀 하나꼬에게 량해를 구했다.

“참 좋구만, 문수씨!”

민혁이가 멀리서부터 비웃는 말투로 시부렁거리며 걸어들어왔다.

하나꼬는 마치 사채업자들의 출현을 전혀 못 느낀 듯이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다.

“알겠어요. 일을 잘 보시고 총부에 가서 잘 검토한 후 나중에 다시 련락드리겠습니다.”

하나꼬가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작별인사 하였다. 말을 마친 하나꼬는 병풍처럼 빙 둘러싼 민혁 일행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초연히 떠나갔다.

“오늘 운이 좋군 녀인이 앉았던 자리에 앉게 됐으니.”

하나꼬가 앉았던 자리에 민혁이가 걸상이 꺼지게 풍덩 앉았다.

“무슨 일이요?”

문수가 아무런 표정도 없이 쏘파에 기대 앉으며 되물었다.

“어데 숨었다가 인제 왔는가?”

민혁이가 거슴츠레한 눈길로 문수를 쏘아보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무슨 일인가 묻지 않소?”

“짜식!”

같이 온 깡패가 성질을 참지 못하고 주먹을 쳐들자 민혁이가 손사래를 쳤다.

“신사답게 놀아야지 사람을 때리면 쓰나…”

민혁이는 문수의 두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천천히 말했다.

“긴 말 필요 없어. 돈을 내놔!”

“무슨 돈?”

“정말 이러래기야?”

민혁이가 열 받은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무슨 돈인가 묻지 않소?”

민혁이가 목소리를 높여도 문수의 목소리는 한결같이 차분했다.

“주회장이 빌려준 300만원! 설마 잊은 건 아니겠지? ㅎㅎㅎ”

민혁이가 으시댔다.

“차용증은 갖고 왔소?”

문수가 손을 내밀었다.

“차용증?”

민혁이가 일순 얼떠름해졌다.

“그렇소, 차용증을 가지고 오오.”

“차용증? 차용증을 갖고 오면 준단 말이지?”

“그렇소. 그러나 차용증도 없이 이미 끝난 일을 갖고 자꾸 찾아오면 나는 당신을 신고할 거요.”

문수가 일어나며 경멸의 눈길로 민혁이를 쏘아보며 말을 이었다.

“나는 앞으로도 영원히 옛날의 전화번호를 그대로 쓸 것이며 24시간 켜놓을 것이요. 숙사도 변함없이 원래 자리에 있으니까 차용증이 있을 때 언제든지 찾아오오… 알겠소?”

말을 마친 문수가 돌아섰다. 민혁의 부하들이 막아나섰다.

“보내라!”

민혁이가 한숨을 내쉬며 한마디 던졌다. 민혁이가 이발을 앙다무는 걸 본 부하들은 문수의 행방을 알려는 듯이 우르르 따라나섰다.

민혁이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차용증을 내놓으라는 문수의 말에 정곡을 찔린 민혁이였다. 차용증이 없어졌다는 안과장의 말이 사실이였다. 도피행각을 벌이던 문수가 나타난 것도 차용증에 문제가 생겼음을 알기 때문인 것이다.

아무리 사채업자라 해도 차용증이 없이는 어쩔 방법이 없다. 사채업자인 것 만큼 법률에 저촉되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돈맛을 들였기에 돈이 되는 일을 하려고 할 뿐 감방 갈 일은 죽어도 안한다.

문수와 정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다. 

화를 참지 못한 민혁이는 탁자를 내리쳤다. 

커피잔이 흔들흔들거리다가 땅에 떨어졌다. 다행히 두터운 주단을 깔았는지라 깨여지지는 않았다.

“아하, 정호! 살아있었구만. ㅎㅎㅎ”

불현듯 민혁의 뒤에서 아츠럽게 징그러운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민혁이가 돌아보니 사채업자 장보와 부하들이 한무리 달려와 정호의 길을 막고 있었다. 평소 거의 거래가 없는 민혁이와 장보이지만 오늘 한자리에 모이게 된 것은 장보가 조변호사의 전화를 받고 출동하였기 때문이다. 아마 민혁이가 현장에 있는 줄 알았더면 장보는 나타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만큼 서로 충돌하기를 꺼려하는 관계였다.

앞이발을 림시로 해서 틀어막은 장보의 말소리는 이상하게 아츠러웠다.

“내 이발, 내 돈, 정호, 너 오늘 죽었다.”

장보가 정호 앞에서 기고만장해 떠들어댔다.

“무, 무슨 일인데…”

장보에게 혼났던 정호인지라 부들부들 떨면서 물었다.

문수가 앞에 나섰다.

“저는 정호의 형, 동방편직의 김문수입니다.”

“그래? 알고 있어요.”

장보가 문수의 얼굴을 보면서 반겼다.

왕도 회장이 그처럼 찾던 문수를 눈앞에 두다니 장보의 눈에는 문수가 재록신처럼 반가웠다. 왕도에게 보여줄 가장 값진 선물임을 장보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문수가 차분하게 물었다.

“당신 동생이 잘 알 겁니다. 저의 돈을 꿔갔지요. 여지껏 물지 않고 도망다니고…”

“아, 그런 일 있었네요. 그런데. 얼마나 되는지?”

문수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되물었다.

“자그만치 15만, 아니, 끊어진 이발 값까지 20만원.”

“오, 다행히 많지 않네요. 카드를 긁을가요? 아니면 위챗으로?”

문수가 휴대폰을 꺼내들고 당장 돈을 돌려줄 것처럼 물었다.

“아, 아무렇게나 하십시오.”

문수의 덤덤한 표정에 기압을 느낀 장보가 어정쩡하게 대답하였다.

“요즘 참 좋은 세월입니다. 은행에 가지 않고도 휴대폰으로 송금하고.”

문수가 혼자소리로 중얼거리면서 휴대폰을 눌러대다가 물었다.

“차용증은 갖고 오셨겠지요?”

“차용증?”

장보의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흘렀다.

“돈을 받겠다는 분들이 차용증을 가지고 오지 않으면 어쩝니까?”

“먼저 받은 다음 차용증을 돌려주면 안될가요?”

“안됩니다. 미안! 돈을 받겠으면 차용증을 갖고 오십시오. 자, 그럼 이만.”

문수가 피씩 웃으며 자리를 뜨려고 한발 내디뎠다.

“못 가!”

장보가 가로막아 나섰다. 장보가 눈짓하자 똘마니들이 문수와 정호를 에둘러쌌다. 장보가 끊어진 앞이발을 가리키며 말했다.

“받을 돈도 못 받고 생 이발이 석대나 부러졌어.”

“내 동생이 때렸는가요?”

문수가 정호를 가리키며 조용히 물었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이 자식 때문에 맞았으니까…”

“보아하니 내 동생을 랍치했던 분들이구만요. 잘 됐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찾으려던 중이였는데.”

“뭐라고? 찾으려 했다고?”

장보의 눈이 뒤집어질 정도로 커졌다.

“당신들은 생사람을 가져다가 귀를 찢었습니다. 구타도 하였고…”

문수가 차분히 말했다.

“헛소리 마! 오늘은 절대로 못 빠져나가.”

장보가 눈짓하자 깡패들이 달려들어 문수와 정호의 팔을 잡았다.

“당신들이 정 이러면 신고할 겁니다.”

문수가 눈 한번 깜짝하지 않고 단호히 맏받아쳤다.

“신고 한다고?”

“아니. 그 이상으로 갈 겁니다. 사기, 협박, 공갈, 랍치, 상해죄로…”

“사기, 협박, 공갈, 랍치, 상해죄? 제길할, 맘대로 해봐라, 씨발, 좆 같은 새끼!”

장보가 커피숍 뚜껑이 열릴 정도로 떠들어댔다. 어데가서도 목소리를 낮춰본 적 없는 장보였다. 목소리 높은 놈들을 다스리는 방법은 단 하나, 목소리를 더 낮추는 것이다. 문수는 장보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차용증을 갖고 오십시오. 그리고 부탁하건대 합법적으로 합리하게, 현명하고 분별있게 행동하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번 말해줄게요. 합법적으로 합리하게, 현명하고 분별있게 행동하십시오. 알겠습니까?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문수의 마지막 말에 충격을 느낀 장보는 문수의 말을 되새기며 눈을 되룩거렸다. 말 속에 담겨진 숨은 말이 무섭게 가슴에 찔렀던 것이다. 분명 믿는 구석이 있는 놈들이 틀림없다. 빚에 쫓겨 거지처럼 쫓겨다니던 문수가 아니다. 이 시각도 누군가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누구도 모르게 정호를 랍치했다가 호텔에서 된통 당하지 않았던가.

문수가 자기 같은 건달들이 상상하지 못할 큰 인물의 보호를 받는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사기, 공갈, 협박, 랍치, 상해죄로 기소되면 이미 저지른 일만 해도 많기에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잘 아는 장보였다. 

“나와 정호는 옛날 전화를 그대로 쓰니까 일 있으면 련락하세요. 일 없으면 오지 말고…”

할 말을 끝낸 문수는 곁눈도 주지 않고 정호와 함께 호텔 정문을 빠져나갔다.

“와! 진짜!”

어데다 화를 풀 길 없었던 장보는 곁에서 명령을 기다리는 졸개의 궁둥이를 걷어찼다.

“따라가 보지 않고 뭘 하는 거야!”

자기의 무리들과 장보의 무리들이 우르르 쓸어나가자 민혁이는 쏘파에 몸을 숨겼다. 자기 혼자 무너졌으면 비참하겠지만 사채 동업자인 장보까지 당하는 걸 보니 자아위안이 되기도 하였다. 온몸이 지친 듯 푹 자고 싶었다.


24

공안국부국장 강호의 일상은 호수처럼 조용히 흘러갔다. 사무실에도 자주 나오지 않았고 가끔 나온다고 해도 사복차림으로 바람처럼 왔다가 구름처럼 사라졌다.

왕뢰 국장 이외의 령도들은 강호 부국장이 누구랑 같이 손을 맞잡고 일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강호는 자기 나름대로 중대사건들을 재조명하면서 수사의 끈을 조여가고 있었다. 그는 문수와 정호가 나타났다는 소식도 가장 빨리 접했고 문수와 정호가 일본 바이어와 만나기 위해 홀리데이호텔 로비에 있다가 사채업자들인 장보, 민혁의 무리들과 충돌했다는 소식도 실시간으로 전해들었다.

그만큼 그는 많은 사람들을 잠복시켰다. 그중에는 경찰도 있고 사회건달도 있으며 보통 백성도 있었다. 강호의 특기인 ‘인민전’을 벌린 것이다. 누가 강호의 사람인지는 왕뢰 국장도 알려하지 않았고 강호 역시 보안을 빌미로 별도로 회보하지 않았다.

공안국 내부에서조차 강호의 행적에 대해 언급하지 않자 안달이난 건 바로 마초였다. 형사대장으로서 응당 참여해야 할 사건에서 배제되였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보아도 달통되지 않았다.

어제도 그는 공안국 국장 왕뢰를 찾았다.

“주회장의 죽음을 둘러싸고 사회에서 여러가지 말들이 많이 돌고 있습데다.”

“그래? 어떤 말이 많이 돌고 있습데?”

왕뢰 국장이 사회에서 도는 소문이라는 말에 흥미를 느낀 듯 물었다.

“경찰이 무능력해서 한가지 사건 가지고 일년을 넘긴다는 둥, 별의별 말이 다 돕니다.”

왕뢰 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말이 돌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지금 우리가 밤을 새면서 일하는 게 아니오? 한번 잘해보자고.”

마초는 왕뢰 국장이 미리 쐐기를 박는 바람에 말도 채 못하고 돌아섰다.


아침 식사를 끝낸 강호는 백지를 꺼내들었다. 사건들을 순서적으로 라렬하고 혐의범들과 사건에 관련되는 사람들의 이름을 새롭게 적어놓고 분석하기 위해서였다. 정식으로 해명된 건 하나도 없지만 중대한 사건에 대한 새로운 선색은 적지 않게 잡았다. 물을 모아 고기를 기르고 있을 뿐이였다. 강호는 이름을 하나하나 라렬하면서 분석에 몰입했다.

건설은행 안과장과 주회장의 마누라가 가만히 만난다고 하는 것은 내연관계임을 말해준다. 말하자면 주회장 생전부터 내연관계였을 것이다. 그리고 안과장과 조변호사가 조용한 곳에서 만나 화기애애하게 헤여졌다는 것은 새로운 발견이다. 

안과장은 주회장의 사람이고 조변호사는 왕도 회장의 사람이다. 라이벌 관계로 건축업계의 두 산맥으로 솟았던 두 사람의 부하가 조용히 서로 만났다는 것은 어떤 리해관계가 있기 때문이였을 것이다.  특히 주회장이 사망한 후 두 사람이 만났다는 것은 그만큼 오갈 수 있는 공통한 분모가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그럼 진성실업의 진성은 누구일가?’

진성실업을 뒤조사해보니 성실한 납세기업으로 좋은 이미지를 싾아온 것이 분명했다. 그들이 청도에 진출한 데 대해서 상해 동업자들은 불가사의하게 느끼고 있었다. 왜냐하면 상해에서도 잘 나가던 진성그룹이였기 때문이였다. 우연하게도 진성그룹이 청도에 진출해 얼마 안되여 주회장이 죽었다. 

‘진성실업과 주회장?’

어떻게 생각해도 한고리에 이어놓을 만한 계기가 없다. 제일 불가사의한 것은 바로 동방편직의 문수와 정호다. 문수는 주회장의 돈 300만원을 꾼 후 빚을 갚지 못해 잠수했다가 다시 나타났다. 제시간에 갚지 못하면 공장부지를 내놓는다는 조약 때문에 빚재촉을 피해 몸을 숨겼던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던 문수가 버젓하게 나와 일본 바이어와 만나 오다 상담까지 했다.

“그렇다면 문수가 돈을 갚았단 말인가?”

강호는 고개를 저었다. 돈을 갚았다면 어제 사채업자인 민혁이가 혈안이 되여 문수를 잡으러 달려가지 않았을 것이다. 입수된 정보에 따르면 사채업자 민혁이와 장보는 문수가 차용증을 내놓으라고 하자 쩔쩔맸다고 한다. 사채업자가 차용증을 갖고 나타나지 않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어제처럼 특별한 경우에는 그럴 수도 있지만 그것도 도리가 아니다. 달아났던 사람을 잡았는데 차용증을 가져오면 될 게 아니겠는가? 그런데 차용증을 내놓으라는 문수의 말에 두 사람 모두 순순히 물러갔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도 불가사의하였다. 그렇다면 차용증은 원래부터 없는 것이였을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대신 돈을 갚아주었을가? 

사건의 실마리는 보일 듯 말 듯 하면서도 풀리지 않았다. 

그는 담배를 물었다. 끊었던 담배를 이번 사건수사 때문에 다시 붙힌 그였다. 그는 수사팀에 두번째 방안 대로 움직이라고 메세지를 넣었다. 두번째 방안은 바로 사건과 관계되는 주변인물들을 비밀리에 검거하는 것을 말한다.

금방 메세지 받았는데 안과장과 사채업자 민혁 그리고 민혁의 녀비서가 다뉴브호텔에서 저녁식사를 같이하기로 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예감이 왔다. 그는 지난번 안과장과 주회장 마누라가 드나들었던 이루빠 아빠트단지를 책임진 경찰에게 전화를 넣었다.

“경각성을 높이고 절대 왼눈을 팔지 말라. 오늘 한건 할 테니까.”

“네.”

강호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아직도 저녁까지는 시간이 멀다. 방 안을 다시 한번 점검한 후 강호는 사복차림으로 문을 나섰다.


25

주회장의 마누라 미나는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냈다. 아이는 보모가 유치원에 보내고 마중하다 보니 그가 집에서 신경 쓸 일은 전혀 없었다. 드라마를 보는 것이 유일한 취미이지만 비슷비슷한 드라마가 질려서인지 요즘은 드라마 대신 위챗에 심취되여 대화를 하거나 휴대폰으로 뉴스를 가끔 보면서 지냈다. 뉴스를 돌려보던 중 그는 진성실업이 태평양실업을 누르고 ‘양로원공정항목’에 입찰되였다는 소식을 보았다.

“진성?”

미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는 진성이라는 두 글자에 끌려 기사를 열어보았다. 낯익은 얼굴이 혹시나 있는가 해서였다.

“와!”

긴장한 눈빛으로 읽어내려가던 미나는 갑자기 얼굴을 감싸쥐었다. 낯익은 얼굴이 나타난 것이다. 미나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가슴이 콩콩 뛰고 몸이 둥둥 뜨는 것만 같았다. 꿈속에서마저 만나보았던 첫사랑 진성이를 본 것이다. 너무나 믿기 어려워 거울을 쳐다보고 볼을 꼬집어봐도 꿈이 아니였다.

“사모님, 택배가 왔어요.”

문밖에서 보모가 가볍게 노크하며 말했다.

“아. 네, 알았어요. 문어구에 놓으세요.”

예전 같은면 물건이 제대로 도착했는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을 것이지만 흥분으로 빨개진 얼굴을 보이기 싫어 미나는 일부러 회피하였다.

“사모님, 문밖에다 놓았어요.”

밖에서 보모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전해왔다.

“아, 네, 알았어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미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랭수로 얼굴을 씻은 후 방문을 열었다. 하나는 얼굴을 식히기 위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문을 열고 내다 보니 보모는 없고 박스만 댕그랗게 놓여있었다. 미나는 제꺽 박스를 들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여느 박스와 달리 발신자와 수신자의 주소를 친필로 썼다. 너무나도 익숙한 필체였다. 

미나는 인츰 방문을 닫고 침대 우에 올라가 박스를 뜯었다. 함 속에는 털실로 뜬 목도리이 나왔다.

“아!”

목수건을 보는 순간 미나는 입을 감싸쥐였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닳아서 목덜미 부근은 하얗게 변했지만 너무나도 눈에 익은 목도리였다. 바로 진성이가 대학에 가는 날 미나가 대학 입학 선물로 밤을 새가며 떠준 목도리이였다.

“진성씨!”

목도리를 가슴에 안은 미나는 마침내 눈물을 흘렸다. 10여년을 가슴에 묻고 살아온 남자가 나타난 것이다. 미나는 다시 박스를 뒤졌다. 아무런 쪽지도 없었다. 

미나는 위챗에 올라 진성이라는 이름을 자기 대화창구에 추가하였다. 상대방이 인츰 수락하였다.

“래일 오전 열시에 령사관 앞 ‘강뚝 꼬치’에서 만나기오.”

상대방으로부터 메세지가 날아왔다. 미나는 회신을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미나와 진성이는 고중 동창이다.

학교에서 공부를 유난히 잘했던 두 사람은 모두 명문대학을 지망했다. 그러나 고중 2학년에 올라가 운명이 갈렸다. 진성이는 승승장구로 공부를 잘하였으나 미나는 일락천장이였다. 어머니가 앓아누웠는 데다가 아버지마저 간경화로 드러누운 것이다. 집안일을 해야 하고 농사일까지 해야 했으며 어린 동생들까지 공부 시켜야 했던 미나는 눈물을 흘리며 학교를 중퇴하였다. 미나는 진성이가 명문대학에 붙는 걸 지켜봐야 하였고 진성이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좋아했던 미나가 공부를 중퇴하고 농민으로 된 것이 안타까워 가슴을 두드렸다.

“내가 졸업할 때까지 기다려주오.”

대학 가는 날, 진성이는 미나에게 정식으로 사랑을 고백하였고 미나는 진성이의 사랑을 받아들였다. 그날 미나는 떨리는 손으로 진성에게 목도리를 선물하였다.

“잘해주고 싶지만 해줄 것이 없어. 내가 이쁘게는 못 만들었지만 비웃지 말고 받아줘.”

진성이는 몇달 동안 밤잠을 새가며 떴을 목도리를 자기의 목에 걸어주는 미나를 그러안고 처음으로 뜨겁게 키스했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버지 어머니의 병을 치료하려고 친척을 통해 이웃 향에서도 잘산다고 소문났던 주회장의 리자돈을 빌려쓴 것이 화근이 되였다. 리자는 날마다 불었고 빚 재촉은 불같이 이어졌다. 

리혼하고 홀로 살던 주회장은 딸과 같은 미나에게 눈독을 들이고 돈을 내던지 아니면 미나를 주던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였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리자돈 앞에서 친척들과 미나 부모는 할 수 없이 손을 들었다. 미나네 집은 물론 사돈에 팔촌까지 다 동원되여도 못 갚을 고리대 앞에서 미나는 인생을 포기해야 했다. 모든 빚을 탕감하고 동생들을 공부시키고 부모님들을 치료해주는 대가로 주회장의 마누라로 된 것이다. 

만장 같은 리별편지를 남기고 미나는 주회장을 따라 고향을 훌쩍 떠나 멀리 왔고 고향과는 인연을 끊고 살았다. 

진성이를 보기가 두려웠던 것이다…


“래일 만난다. 래일 만난다…”

미나는 마치 감옥에서 출소를 앞둔 사람처럼 안절부절 못했다. 랭수를 벌컥벌컥 들이켜도 소용없었고 독한 양주를 마셔봐도 소용없었다. 취하기는커녕 점점 더 정신이 밝아왔다.

미나의 시간은 초침따라 무겁게 흘러갔다. 그는 처음으로 하루동안 딸애를 잊고 살았다. 일각이 삼추 같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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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강일 추리소설] 도시는 알고 있다(1)
[허강일 추리소설] 도시는 알고 있다(2)
[허강일 추리소설] 도시는 알고 있다(3)
[허강일 추리소설] 도시는 알고 있다(4)
[허강일 추리소설] 도시는 알고 있다(5)
[허강일 추리소설] 도시는 알고 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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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허강일 추리소설

[珍藏版] "흉수는 바로 그놈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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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작가와 작품



2020년 최신 작품

(수필) 귀뚜라미와 손 잡고 지구촌을 유랑하려나 (이문혁)[칼럼] 포스트코로나시대,우리는 무엇을 갖춰야하나(허명철)(론단) 우리는 왜 문학을 하지? (우상렬)
[김학송 시 "사랑의 향기"5] 나는 그대를 사랑했더라 (외10수)


2020년 작가
칼럼이문혁허명철박광성강효삼리성일장동일최학송박승권김혁현춘산채영춘주소란|박광성|예동근|김범송김경애김문일김광림리동렬김혁김정룡리성일문학김학철김혁림원춘허강일|허미란박장길렴광호궁금이김재현김수영김두필김일량현춘산서가인리문호리광인김혁한석윤|허미란김학송김호웅남룡해김영분리문호궁금이림운호장학규리련화한영철박장길서가인김경진김영택김학송김병민김복순최상운채영춘리광인김정권허강일김명숙김춘실류재순려순희김홍남윤청남리동춘||심명주최화|김명순한영철[허강일 추리소설] 도시는 알고있다6[허강일 추리소설] 흉수는 바로 그놈이였다력사[구술] 김학철(1)[구술] 남영전(6)양림(구술)채영춘(10) 리광인 실화문학《아,나의 중학시절이여》(구술)림원춘(7) |특집리광인 '70년대 조선족'12[珍藏版] 우리말 어원 산책(렴광호)| 정음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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