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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몽당치마 (림원춘)[조선족대표문학작품선1]

2015-02-07 조선족 대표위챗 潮歌网

[조선족대표문학작품선1]

단편소설《몽당치마》는 1983년 중국 "전국우수단편소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림원춘 1937년생.

[단편소설]

몽당치마

림원춘

1

너울을 쓰고 이씨 가문의 문턱을 넘어서는 그날까지도 나는 그 여인을 본적이 없었다. 사촌만 해도 스물넷이나 된다고 시아버님께서 자랑삼아 말씀하시더니 친척들이 너무 많아서 그 여인을 몰라봤는지 모르겠다.

가계가 양반의 후예라서 그랬던지, 아니면 지체가 이만저만 아니여서 그랬던지 시집에 모인 친척들은 많기도 했다. 얼핏 스치는 눈어림으로도 몇십명 잘될상 싶었따. 그속에서도 나는 그런 여인을 본적이 없었다.

이씨네 가문엔 친척들이 많기도 했다. 첫날 색시라 나는 부끄러워서 낯을 들지 못하면서도 걱정스런 마음을 가라앉힐바 없었다. 기쁜 마음은 한이 없지만 시름거리도 그에 못지 않았따. 시름거리란 다른것이 아니였다. 본가집 살림 궁하다보니 이튿날 아침 친척들에게 올릴 례단을 남들처럼 많이 준비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 여인과 같은 그런 여인은 해임수에 넣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군일이 생길때마다 좋소 궂소 하고 들이밀쭉 내밀쭉 하는것도 친척이요 잘했소 못했소 하고 얼굴을 붉히는 것도 친척이니 말이다. 다른 손들에게서야 극상해서 잘 차렸소 못 차렸소 잘 먹었소 못 멋었소 하는 소리로 끝을 보지만 친척들은 입술에 말을 발라가지고 두고두고 옛말을 하게 되니 기실 반가운것도 친척이요 무서운 것도 친척인셈이다. 지어 인사차례 마저 내가 받을 절을 네가 먼저 받았다 네가 받을걸 내가 받았다 하며 노염내고 돌아앉게 되니 까딱하면 말썽이요 지떡하면 당장 떠난다는 판이라 기뻐하는것도 친척이요 곤대질하는것도 친척인 법이다. 하물며 한다 하는 이씨 가문의 맏며느리로 들어서는 내가 예단감을 푼푼히 준비하지 못했으니 뒤가 무겁지 않을수 있겠는가.

치마폭을잡아 끌고 뒤는 다는 걱정은 그것만이 아니였다. 내노라 하게 차려 가지고 오지 못하고 겨우 이불 한채에 첫날옷, 트렁크 하나뿐인데 트렁크속에 든것마저 태반이 시집에서 예장감으로 가져온것이니 친척들이 색시의 차림새를 구경할때 뒤소리를 얼마나 할까싶어 꽃방석에 앉은것이 아니라 우툴두툴한 바위위에 앉은 것만 같았다.

색시의 큰상차림에서 그 집안을 보아낸다는 말이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근년에는 승벽내기로 큰 상들을 준비하곤 했는데 내가 받은 상은 얼핏 스치는 눈저울에도 쉰장 하나를 가지고는 될상싶지 않았다. 상다리 부러지게 차렸다는 말이 내가 받은 상을 두고 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럴수록 꼬리를 무는 걱정은 더 커갔다. 모든것은 엎음갚음이라지만 한쪽이 너무 기울어졌으니 면목이 서지 않은것은 둘째치고 뒤공론에 귀가 가려울것이 더 걱정이였다.

첫날 색새의 일솜씨를 구경하느라고 그랬던지 아니면 첫손으로 지은 밥을 맛보느라고 그랬던지 이튿날 아침 진지를 새색시가 짓는것은 조선족의 재래로 내려온 습관이였다. 글눈보다 일눈을 먼저 틔운 나를 놓고보면, 더더구나 때시걱은 내 손 몰래 지나친 일이 없으니 만큼 손끝에서 물방울이 말라본적 없는 나를 놓고보면 그까짓 밥을 하는것쯤은 대수가 아니였으나 숱한 친척들의 눈길이 나를 투시한다고 생각되자 어쩐지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한 두사람의 밥도 아니요 수십명의 밥을 지어야 하니 밥이 타거나 서는것은 여반장인데 어떻게 하면 타지도 않고 설지도 않게 눅지도 않고 되지도 않게 하겠는가 하는 우려가 가슴 한구석을 누르고 있었다. 그것도 그럴것이 처음 짖는 밥이 눅으면 각시복을 받지 못하고, 되면 남편복을 받지 못하고 , 설면 살림이 궁해지고 타면 집안이 망한다는 얼거지 떨거지 소리를 신조처럼 믿어오는, 이씨 가문의 풍속이니 말이다. 하기야 밥이 타거나 되면 여차여차하게 복을 누리고... ... 여차하게 자손들을 잘 키운다고 왕청같은 좋은 말을 늘어 놓으면서 술잔을 기울이기 마련이지만, 다시 말하면 나빠도 좋은 징조로 돌려대면서 아침을 쓰기 마련이지만 같은 값이면 분홍치마랬다고 어쨌든 첫 밥을 물맞게 잘 지어야 했다. 아마 이래서 삼일전까지 색시는 기쁨 절반 시름 절반이라고들 하는 모양이었다.

"아유, 새색시가 벌써 가마목에 앉았구만””

내가 밥물을 맞추느라고 가마에서 ㅁ루을 떠냈다가는 적은것 같아서 도로 쏟아넣고 쏟아 넣었다가는 많은것 같아서 되떠내면서 가불을 짓지 못하는데 키가 훤칠한 40좌우의 아주머니가 부엌문을 떼고 들어서면서 미안쩍게 말하는것이었다. 남성적인 바스 음성이었다. 그는 곧바로 가마 앞으로 오더니 밥물을 보는것이었다.

"묵은 쌀과 달라 햅쌀이 돼서 물을 적게 타오. 물을 좀 떠내오””

그 아주머니는 내 귀에 대고 조용히 귀뜸해주고 부엌에 내려앉더니만 장작을 아궁이에 밀어넣기 시작했다.

나는 밥물을 떠내다말고 그 아주머니를 내려다보았다. 낯선분이었다. 약혼한지 이년이나 되는새에 나는 남편과 함께 친척집을 다 돌아보앗고 시집에서 약혼잔치를 차렸을때도 가문에 호구를 붙인 사람이면 사돈의 팔촌까지 다 모여왔지만 지금 부엌에 앉아있는 여인은 본적이 없었다. 잔치 이튿날이라 동네 아주머니가 와서 거들어줄리도 없었다. 그렇다면 저 고마운 여인은 누구일까? 새색시라 나는 곁사람과 누구인가 묻지도 못하고 그저 그 아주머니가 시키는대로 가마에서 물을 떠냈다. 장작을 서리우던 그 여인은 안심되지 않아떤지 다시 우쭐 일어나 밥물을 보고서야 낯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량귀밑으로 훔쳐오리며 웃음기를 보일까 말까 하면서 부엌에 앉는것이었다. 그 여인이 일어서는 순간 나는 어덴가 격에 맞지 않는 그의 옷매무시에 눈을 주었다. 몽당치마였다. 무릎을 겨우 가이운 그 검은 몽당치마는 판나지는 않았지만 색이 날아있었다. 아마 부엌일을 하려고 뉘것이건 쥐이는대로 대충 걸치고 왔나 보다고 생각했다.

내가 밥을 다 안쳐놓고 가시대에 마주앉아 그릇들을 가시려고 할때 사랑채에 나갔던 시어머님이 두부며 돼지고기를 한소래 담아들고 들어섰다.

"이 사람 조카댁, 왔구만””

시어머님은 그 아주머님을 보자 대뜸 화색이 만면해지면서 말했다.

"잠깐 눈을 붙인다는것이 그만 너무 잤댔어요."

이상하리만치 코에 걸리는 달짝지근한 바스음성으로 말하며 그 여인은 늦어서 미안하다는 듯 나를 흘끔 쳐다보고는 인츰 머리를 숙이며 부엌아궁이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조카댁?"

나는 흠칫 놀랐다. 어머님의 조카댁이면 나에게는 동서간이 되지 않는가? 그런데 왜 나는 여직 모르고 있었을까? 아마 료령이거나 흑룡강에 멀리 떨어져 있는 먼 친척인가 보다고 여겼다.

"그 입술에 물집이진걸 보게. 사촌 시동생을 장가 보내력다 자네가 드러눕고 말겠네."

시어머님이 혀를 끌끌 차면서 말했다.

"작은 어머님도 별말씀 다하세요, 뭐 못할 일을 해요?"

"자네 몸은 쇠로 빚었겠나?"

"되려 부끄러워요."

알고 보니 사촌동서였구나... 나는 인사도 못올리고 처음 대하는 사촌동서를 보기 면구스러워서 귀밑부터 고추물을 들이기 시작했다.예의바르고 인사범절이 여간하지 않다던 이씨네가문에서 왜 사촌끼리도 인사를 시키지 않는단 말인가. 엊저녁에 노래와 춤판이 벌어졌을때 일가 친척들은 물론 코흘리개까지도 다 출도한 셈이지만 사촌동서만은 본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더더구나 자기의 생색을 내느라 친척들은 자기와 신랑과는 여사여사한 친척이 되는데 손님들이 오셔서 기쁘게 놀아주니 감사하다는 인사말 몇마디쯤 하고야 노래거나 춤을 추는 판인데 자기로서가 아니라 소개를 받으며 떳떳이 나서야 할 사촌동서를 면목도 익히지 못했던것이다. 별난 집안도 다있따싶으면서 다시 동서를 내려다보니 동서도 낯이 빨개진채 부지갱이로 불만 뚜지고 있었다. 나의 눈길은 다시 그 몽당치마에 가 떨어 졌다. 섰을 때는 겨우나마 무릎마디를 가리워 주던것이 쭈크리고 앉으니 무릎도가리우지 못했다. 그 밑으로 판난 수갑이며 양말짝을 풀어서 물레로 뺀 무명실에 섞어 뜬 알록달록한 내의가 보였다. 그것은 나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처음 대한다는데도 기인되겠지만 옷매무시로부터 바스음성에 이르기까지 그 모두가 팔간집에 차고 넘는 친척들 가운데서 기중 나의 이목을 끌었다.

그 다사한 잔치에 그릇 하나 '틸�진것이 없으니 복우에 복이라는 등 잔치술 뒤끝엔 싸움이 벌어지기 일쑤인데 유리 한장 깨여지지 않았으니 잘 살겠다는둥 거기다 새색시가 한 밥이 딱 맞춤하니 호박이 덩굴채로 굴러 들겠다는둥 (기실 사촌동서가 제 홀로의 생각에 묻혀있다보니 불을 맞추어 때지 못해서 밥이 탔건만.) 이런저런 좋다는 소리를 다하면서 아침 늦게야 상을 물리고 내가 제일 걱정하는 가문잔치가 새로 벌어지게 되였다. 예전에는 축수라고 일컬어왔지만 지금은 가문잔치로 번져눕고 말았다. 매 사람에게 드릴 예단을 한가지씩 상우에 놓고 신랑이 술을 부으면 신부가 술잔을 권한 다음 신랑신부가 함께 절을 올리는것이니 아마 집안사람끼리 하는 잔치라고 하여 가문잔치라고 하는가 싶다. 나는 옆에서 시키는대로 시아버님, 시어머님, 차례로 내려가면서 내가 가지고온 예단을 올려놓고 술을 권한다음 남편과 함께 절을 올리곤 했다. 내가 가지고 온 밑천을 내가 잘 알고 이었다. 친척들은 많고 예단은 적은데 어떻게 한단말인가? 술을 권하고 절을 올리지만 나의 몸은 얼어있었다. 나는 송곳방석에 앉은 사람처럼 다음에는 뭘 올려놓나 뭘 올려놓나 하면서 옆에서 시중드는 시어머님의 눈치만 살피곤 했따. 하지만, 시어머님은 아무런 딴 기미도 보이지 않고 나이론 양말이며 세수수건 같은것을 상위에 올려놓는것이였다. 하지만 그것들은 내가 준비해온 례단이 아니였다. 나는 그제야 시어머님이 나를 위해서 예단을 따로 준비해두고 있었다는것을 알았다.

가문잔치도 거의 끝나게 되었다. 하지만, 당당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새각시의 례단을 받아야 할 몽당치마의 몫은 그때까지도 없었다. 예의를 놓고 보거나 친척들의 차례를 놓고 보아도 사촌동서는 언녕 례단을 받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사촌동서를 차자는 사람이 없엇고 사촌동서도 나서려 하지 않았다. 애들에게까지 손수건 하나씩 주는 판이라 나는 너무도 이상하여 옆에 계시는 시어머님 보고 가만히 귀띔했다.

"어머님, 사촌동서 몫은 없어요?"

"아유, 깜박 잊었구만."

그제야 시어머님은 가마목께로 눈길을 던지며 소리쳤다.

"이 사람 조카댁! 이 사람-"

하지만 가마목은 비어있었다. 가문잔치가 벌어지기 전까지도 땀벌창이 되어 가마를 안고 돌던 사촌동서는 어데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이 사람 동불사댁은 어데 갔나?"

하지만 그 누구도 모르고 있었다. 언제 자리를 떴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알려고도 하지 않아다. 누구 다음에 제 몫이 돌아오겠는가 어느떡이 더 큰가를 살피다나니 남의 걱정 할새가 없었거니와 몽당치마에 대해선 눈에 담아보지도 않았으니 어데 갔는지 알리 없었다.

"빨리 동불사댁을 찾아오게!"

시어머님이 정지에 대고 소리쳤다.

"빈손으로 왔으니 자리를 피했나봐요."

같은 사촌동서인 조양천댁이 입을 이죽거리며 찾아서는 뭘 하겠는가 하는 투로 말했다.

나는 그 소리에 아릴사 하면서도 시큼한 그 무엇을 느끼며 바스음성이 들리기를 기다리며 바당문께로 눈을 돌렸다. 하건만 떡과 과자를 든 조무래기들이 좋아서 떠들어대며 들락날락 할뿐 눈에 익을 몽당치마는 보이지 않았다. 시어머님만은 어덴가 못마땅한 기분이였으나 다른 친척들은 여전히 웃고 또느는 품이 몽당치마쯤은 안중에 있는상 싶지도 않았다.

인사차례가 끝난 뒤끝에 부어라 마셔라 하는것이 격으로 됐으니 재벌 술상을 벌려야 했다. 동서들도 많고 쌍태를 드리운 ㅅ ㅐㄱ시들도 맣ㄴ았지만 선뜻 팔을 걷어 붙이고 가마목에 들어앉는 여인은 하나도 없었다. 이상하리만치 맥맥한 기분이었다.

"이 사람 조카댁, 빨리 상을 차리게."

뒤끝이 부산하고 그릇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시어머님이 조양천댁을 보고 말했다.

"동불사 형님은 어데 가셨나? 인남아 빨리 가서 동불사 맏어머님을 오시라고 해라!"

조양천댁은 어느새 쥐였는지 채함지에서 닭고기를 쥐여 제 아들에게 주며 소리쳤다.

"아니 동불사댁만 맛인가? 자네가 가마목에 앉으면 못쓰나?"

시어머님이 안색을 흐리우며 말씀했다. 손포가 많지만 진짜 손쓸 사람이 없었으니 말이다.

"동불사 형님이 다해놔서 뭔지 알아야 하지요?"

산뜻하게차려입은 치마저고리에 기름이 뛸가 그랬던지 그릇마다 기름이 묻어서 미끌미끌하여 손대기 싫어서 그랬던지 조양천에 계시는 사촌동서는 좀체 가마목을 차지하려 하지 않았다.

"칠칠한 여자들이 한구들이 돼도 가마목지킬 사람은 하나도 없구나! 쯔쯔..."

시어머님이 조카들과 손녀들을 둘러보며 나무람했다. 그제서야 정지에 앉았던 여자들이 뜨직뜨직 가마목께로 다가갔다. 보기가 차마 면구스러워 나도 첫날옷을 벗고 일차비로 삼일에 입는 옷을갈아 입었다.

그때, 바로 덜커덩하는 문소리와 함께 몽당치마가 바당문안에 들어섰다. 나는 무릎을 가리울까 말까 하는 치마가 펄렁이며 바당문턱위에서 날리는 것만 좁고도 동불사에 계시는 사촌동서구나 하고 대뜸 넘겨짚었다. 그제야 정지에서는 몇십년만에 만나느 친지를 대하는것처럼 우와하고 일어서면서 낯에 웃음 꽃들을 피우는 것이였다. 아낙네들은 너나없이 콩나물이 머리를 쳐들듯 우쭐우쭐 일어서며 야단법석이었다.

"아니 어데 갔다가 인제 오우?"

"작은 어머님이 례단을 놓고 얼마나 기다렸다구?"

"그래도 동서가 집안의 모막이라니..."

"동서가 없으니 한자리 빈것 같습데."

이 입 저 입에서 튕겨나오는 말에 나는 웬일인가 싶어 이 동서 저 형님, 조카, 아주머니들을 둘러보았다.례단을 받을때는 그 누구도 찾지 않던 그들이 그새 그리도 못견디게 그리워졌을가? 그들은 낯에 웃음을 달달 구을림녀서 자기가 더 관심있다는 듯이 목소리를 두드러지게 내느라 짬을 타다가 다른 사람의 여음을 물면서 한음 높이는데 그 소리들이 합쳐서 장타령 비슷한 그 무슨 음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 기다렸다는 긋이 뽑아대는 조양천댁의 가늘면서도 삐여진 쏘프라노식 음성이 더더욱 두드러졌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들은 약속이나 한듯 가마목께서 물러나 고방에 들어가는가 하면 먼발치로 앉은 걸음을 치는 것이었다.

"속탈을 만나서..."

귀맛 돋구는 그 바스음성이었다. 그 소리는 고음으로 고우던 다른 음성들과 대조되면서 귀맛좋게 들려왔다. 하건만 그 소리는 햅쌀이 돼서 물을 덜 탄다고 소근거리던 부드러운 저음과는 달리 어딘가 젖어있었다.

나는 동불사댁을 쳐다보았다. 그 널직스럼하고 실주름 마다엔 인자가 폭폭 갚였던 얼굴이 어덴가 일그러져 보였고 땀구멍마다 서글픔이 파고든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인침 웃음을 담으며 팔을 걷고 가마목에 앉는것이었다.

어렸을ㅈ거부터 궂은 일 된일 가리지 않고 일에서 뼈마디를 키워왔는지라 나는 동불사 동서의 일솜씨에 마음이 확 쏠렸다. 뼈도 굵거니와 살집도 좋아서 얼핏 보면 손발이 잴것 같지 않았으나 가마목을에 여간 숙달하지 않아다. 무슨 일에서나 입보다 손발을 먼저 놀리는 그런 류형의 농촌여성이었다. 잔치객들이 잔치선물로 떡이며 과자등속을 이고 들고 한 사람 두사람 떠나가기 시작했다. 하건만 동불사 동서는 가마목을 척 차지하고 앉아서는 그 시끄러운 뒤걷이를 하는 것이였다. 우리집은 형제간이 사형제나 되지만 모두 사내들이고 여자가 없다보니 시어머님이 자질구레한 뒤수습을 해야 했다. 이것을 잘 알고 있는 동불사 동서는 집에 잔밥들이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줄 번연히 알면서도 작은 어머니의 일손을 덜어주느라 늦게 떠나기로 작심했던것이다.

오후에 잔치객들이 다 떠나자 빌려온 그릇들을 돌려주는 한편 저녁 차비를 하느라 나는 동불사 동서와 함께 가마목에 앉게 되었다.

"형님, 이씨 가문에 친척이 많다더니 정말 많기도 하구만요."

인사할때는 다 소개받았으나 친삼촌이거나 외삼촌 몇몇 가까운 친척을 내놓고는 딱히 몇촌벌 되는 관계인지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나는 그 널직한 팔간집에 신골박듯 들어찼던 친척들을 상기하면서 동불사 동서보고 말했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소."

동불사 동서는 서운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나는 그 많은 친척을 두고 왜 저러냐 싶어 물었다.

"그 많은 친척을 두고 적다니요?"

"한 집안끼로도 친척이 있는 집이 있고 없는 집이 있소."

알고도 모를 소리였다. 친척이면 친척이지 친척이 따로 있단 말인가? 나는 저녁거리로 돼지고기를 썰다 말고 동서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팔죽같은 땀을 흘리며 팔을 걷어붙이고 일하는 동서의 얼굴에서는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왜 아주버님과 동행하지 않았어요?"

"아주버님?"

동서는 이상하리만치 의혹에 찬 눈길로 나를 쳐다보다가 일손을 다그치는 것이였다.

"그럼요. 애들까지도 다 데리고 오지요. 친척마다 다 데리고 왔던데요."

"사람값에 오르지 못하는걸 데려와선 뭘 하겠소?"

귀에 걸리는 부드러운 바스가 아니라 거쉰 바스였다.

"네?"

동불사 동서는 더는 말과 싱갱이질 하기 싫었던지 아니면 나의 물음을 피하느라 그랬던지 구지렁물을 버린다 쓰다 남은 채소 소래를 사랑채에 내간다 하는 선일들만 골라하는 것이었다.

동불사 동서는 뒷일을 말끔하게 다해놓고 그날 저녁 늦차로 떠나겠다고 서둘렀다. 시어머님은 내가 놓았던 례단이며 먹다 남은 떡이며 낡은 옷견지 같은 것들을 한보따리 꿍쳐서 동불사 동서에게 주었다.

"헌 투레기뿐인데 애들에게 기워 입히게나””

"작은 어머니, 나도 친척이노라 하고 나설때가 있을까요?"

동불사 동서는 말없이 보꾸레미를 받으며 눈물을 훔쳤다. 짧은 사이지만 함께 뒤걷이를 하면서 맺힌 정에서였던지 동서의 그 말에 나는 가슴이 찡해옴을 어쩔수 없었다. 그 말에서 나는 동서를 주눅이 들게 한 생활 처지를 엿볼수 있었다.

"애들이 자라는것이 잠시라는 말도 있지 않소? 그것들이 자라면 옛말할때가 있을거요."

시어머니는 자켓호주머니에 손을 넣더니만 미리 준비했던 돈 10원을 꺼내여 동서의 손에 쥐여주었다.

"적은데 애들 학비에 보태오."

"이 꾸레미는 받아도 돈은 못받겠어요. 빈손으로 온것만 해도 낯을 들지 못하겠어요."

실히실히한 몸집과 남성적인 체대에 맞는 바스음성이 아니라 거쉬면서도 가는 고음이 모기소리처럼 그 실한 목구멍에서 겨우 새어 나왔다.

아, 나는 그제사 동불사 동서가 왜 례단을 올릴때 자리를 피했는가를 알았다. 그리고 이씨 가문을 나들기 시작한지 이년 남짓이 되지만, 흑룡강이나 료녕이 아니라 자동차를 타도 한시간 안팎에 다달을 가까은 곳에 사촌동서가 살고 있었지만 왜 지금껏 모르고 있었는가를 알았다. 나는 물갈기 이는 가슴을 엎누르며 사촌동서의 손을 꼭 쥐고 말했다.

"형님, 치마라도 한감 사입으세요."

"이렇게 신세만 져서…"

"진짜 신세를 누가 지오? 보리고개에 강냉이쌀을 꾸어다 먹고 가을에는 입쌀을 보내고 몇푼되지 않는 돈을 빌려쓰고는 그 배로 쌀되박을 들고 오니 진짜 신세를 누가 지나 말이요. 바쁜 목을 열어 주었다고 그 배로 갚으면서도 항상 신세를 지는것처럼 생각하지… 손에 쥔것이 없고보면 그런법이요 쯔쯔… 가난이 원쑤라니까."

지금은 집안에 앉아서 가마뚜껑을 운전하고 있지만 토지개혁때 부녀회사업까지 맡아하셨다는 시어머님의 말씀은 정말 시원시원도 했다. 그 말씀을 듣는 서슬에 나는 몽당치마를 대신해서 시어머님께 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그런 감정에 사로잡혔다.

동불사 동서는 밤차로 떠나갔다. 하건만 눈에 익은 그 몽당치마와 귀맛 돋구는 그 바스음성만은 잊을 수 없었다.


2

이씨 가문은 사람이 불으면 불었지 줄어들줄 모른다더니 사람이 많기도 했다. 거기에다 사돈이요, 문객이요 하면서 경사가 나질때마다 사돈에 거돈까지 몰려들다 보니 잔치가 벌어진다 하면 친척잔치로 이삼일씩 걸리는것이 보통이었다.

시아버님이 지구교육처 처장으로 사업하고 남편이 공업국 국장으로 일하는 덕분이였던지 손이 두텁게 부조를 해서 그랬던지 나는 ...

《몽당치마》는 아래의 阅读原文을 클릭하면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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